
515번쩨 독서요약 입니다.
■ 키워드
자본주의 실체, 자유무역, 경제개방
■ 책 정보
- 제목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저자 : 장하준
- 출판일 : 2023년 3월 30일

■ 상상빌더 한줄 요약
자본주의와 자유시장 신화의 이면을 알아보자.
■ 책 소개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가 처음으로 보통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한 본격 교양 경제서. 자유 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도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공기업 문제가 과연 민영화로 해결 가능한지, 지식재산권이 실제로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떤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경제 발전에 적합한 문화나 민족성이 있는지 등 중요한 경제 현안들에 대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나 영화 등을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답해 준다.
이 책은 장하진 교수의 이전까지 책들과는 문체나 구성 방식 자체가 다르다. ‘미국의 양심’이라는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이 책은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생생하고, 풍부하며, 명료하다.” 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경제부장인 래리 엘리엇 같은 이는 “최고의 책이다. 탄탄한 연구를 기반으로 아름답게 서술된 이 책은 그야말로 경제학의 파노라마”라고 격찬한다. 미국판 편집자는 이 책의 목적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교리 속에 도사린 함정을 폭로”하는 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 장하준 교수가 구사하는 무기는 “십자포화처럼 쏘아대는 풍부한 사례, 야유에 가까운 위트, 그리고 매력적인 문체”라고 평가한다.
■ 책에서 얻은 내용
○ 부자 나라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금서로 지정된 2008년 여름은, 그해 9월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로 도화선이 된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미 세계 금융 시장은 불안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금과옥조로 여겨지던 때였다.
이런 조류에 역행해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담론이 얼마나 허약한 역사적ㆍ이론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고, 그것이 추천하는 무역 자유화ㆍ외국인 투자 자유화ㆍ민영화ㆍ보수적 재정 정책 등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보여 주려고 했다. 이 책이 강조한 것은, 이런 정책이 개발도상국에 특히 안 좋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선진국이 경제 발전을 할 때에는 그들이 현재 개발도상국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쓴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자유 무역의 시조로 여겨지는 영국은 양모 등 원료 수출에 의존하던 19세기 초까지는 엄격한 보호 무역으로 자국 산업을 발전시켰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 해밀턴(10달러짜리 지폐에서 그 얼굴을 볼 수 있다)은, 후진국 정부는 (부모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 아이를 보호하듯이) 자국 산업이 자력으로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획득할 때까지 보호 무역을 하고 보조금을 주어 육성해야 한다는‘유치산업 보호론’을 제창했다. 미국 정부는 미영전쟁(1812~1816년)을 겪으면서 산업화의 중요성을 느껴 그 이후에 (해밀턴은 이미 1804년에 결투에서 사망했지만) 그의 이론을 채택했고, 일단 유치산업 보호를 시작하자 세계 최고의 관세율을 자랑하는 보호 무역의 아성이 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이어졌다. 독일, 스웨덴 등 많은 수의 유럽 국가가 19세기 중반 이후 해밀턴의 이론을 발전시킨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이론을 받아들여 보호 무역을 하였고,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을 포함한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쓰면서 중화학 공업을 키웠다. 20세기 후반에는 일본을 필두로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보호 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극심하게 규제하면서 국내 기업을 보호하였고, 금융 지원ㆍ보조금 지급ㆍ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정부가 지정한 ‘전략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는 강력한 산업 정책으로 자국 산업을 키웠다.
이렇게 보호 무역과 산업 정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가 이제는 후진국에 자유 무역을 해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은, 곤경에 빠진 나그네를 돕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남을 돕는 척하면서 해코지 하는 위선적인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이 책의 제목 뒤에 숨어 있는 ‘잊힌’, 아니 의도적으로 ‘지운’ 자본주의의 역사이다.
○ 한국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의 희생자였다.
1997년 외환 위기는 사실상 김영삼 정부 때 이루어진 지나친, 그리고 지나치게 급격한 금융 자유화의 결과였지만, 국내외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이 과거의 ‘잘못된’ 국가 주도형 경제 모델 때문이라고 호도하면서 적극적인 개방, 민영화, 규제 완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우선 경제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1인당 소득 기준으로 6%가 넘던 경제 성장률이 2~3%대로 떨어졌다. 경제가 성숙하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비율이 갑자기 2분의 1 내지 3분의 1로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업의 투자 감소이다. 외환 위기 이후 자본 시장이 개방되면서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 특히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세어졌고, 이들이 계속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면서 대기업의 장기 투자가 힘들어졌다. 또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금융 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은행 대출에 대한 정부 규제가 없어지자, 은행은 위험이 높은 기업 금융 대신에 ‘앉아서 돈 버는’ 주택 담보 대출이나 소비자 금융을 주로 하기 시작했다. 은행 대출 중에 기업 대출의 비율이 1990년대 초 90% 선에서 30~40% 선으로 떨어졌고, 이에 따라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투자가 어려워졌다. 결국 투자율은 국민소득 대비 35% 선에서 30% 선으로 떨어졌고, 경제의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설비 투자는 더 큰 폭으로 떨어져서 국민소득 대비 비중이 외환 위기 이전 14~16% 수준에서 7~8%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다. 투자가 줄어드니 경제 성장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투자가 잘 안 되니 산업 구조의 고도화도 정체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70~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기존 산업 안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옮아왔지만,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계, 제약 등의 분야나 생명공학, 나노 기술 등 신기술 분야에서는 선진국의 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고, 대다수 산업의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에 맹렬히 추격당하고 있다. 조선, 철강 등은 이미 중국에 크게 잠식당했고, 이제 자동차나 휴대전화마저 중국의 위협이 느껴지고 있다. 그나마 아직은 괜찮다고 하는 반도체도 중국이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어서 그 우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산업 구조의 고도화가 정체되고 있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금융 시장의 변화에 따른 기업 투자의 부진이 큰 이유 중 하나이지만, 경제 계획 및 산업 정책이 폐기되면서 신산업 개발이 더뎌진 것도 또 다른 중요한 이유이다.
외환 위기 이후 일어난 변화는 성장의 둔화만이 아니다. 고용도 불안해졌다. 가뜩이나 높았던 비정규직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정규직도 과거에 비해 고용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더구나 복지 제도가 취약하다 보니 일자리를 잃으면 생계가 곤란하고 재기가 힘들어, 고용 불안정의 증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공공복지 지출은 GDP 대비 10% 수준으로, 멕시코에 이어 OECD 회원국들 중에서 두 번째로 낮다. 프랑스(32% 선), 핀란드(31% 선), 덴마크(29% 선), 스웨덴(27% 선) 등 유럽의 고도 복지국가들의 3분의 1 수준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선진국 중에서 복지 지출이 가장 낮다는 미국(19% 부근)에 비해서도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하다못해 ‘신자유주의 모범생’으로 알려진 칠레(11% 부근)보다도 낮다.
고용은 불안한데 육아, 교육 등에 대한 보조도 미비하니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출산율은 세계 최저 1, 2위를 다투는 나라가 되었다. 실업 보험과 연금이 형편없으니 실직을 한다거나 은퇴를 하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이에 따라 자살이 급증하여 1995년까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던 우리나라 자살률이 이제는 평균의 세 배 수준으로 단연 1위가 되었다.
○ 누가 세계 경제를 운용하는가?
세계화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은 부자 나라들에 의해 결정된다. 설령 부자 나라들이 의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부자 나라들은 세계 생산고의 80%를, 국제 무역의 70%를, (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의 70~9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부자 나라들의 국가 정책이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항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예컨대 선진국들은 특정한 정책의 채택을 대외 원조의 조건으로 삼는다거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채택과 같은) ‘착한 행동’에 대한 대가로 특혜적인 무역 협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가난한 나라들이 특정한 정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간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IMF와 세계은행은 1944년 전후 국제 경제 관리 체제를 구상 중이던 연합국(본질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의 회담을 통해 설립되었다. 이들을 ‘브레턴우즈 기구’라고 부르는 것은 IMF와 세계은행의 설립 제안이 나왔던 회담지가 바로 미국 뉴햄프셔주에 위치한 휴양지 브레턴우즈이기 때문이다. 원래 IMF는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또 공식 명칭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인 세계은행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국가들의 재건 및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들의 경제 발전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즉 세계은행은 (도로나 다리, 댐과 같은) 기반 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해당 국가의 재건과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제3세계 외채 위기가 있었던 1982년 이후 IMF와 세계은행의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이들은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SAPs이라는 합동 작전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정책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브레턴우즈 기구의 본래 임무에서 훨씬 벗어나 정부 예산, 산업 규제, 농산물 가격, 노동 시장 규제, 민영화 등 개발도상국들의 거의 모든 경제 정책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 들어 차관에 이른바 체제 관련 융자 조건governance condi-tionalities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들의 ‘임무 확장’이 한층 더 진전되어 민주주의, 정부의 분권화,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론 기업의 지배 구조와 같은 그 이전까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영역에 대한 간섭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임무 확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IMF와 세계은행은 상당히 제한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범하였다. 그렇지만 이 기구들은 자신들로부터 돈을 빌려 가는 나라들은 경제 운용에 실패한 나라들이고, 그런 만큼 그것이 경제적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자신들의 본래 임무를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른다면 우리 인생에서 IMF와 세계은행이 개입하지 못할 영역은 없다.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경제 활동과 관련이 있는 만큼 IMF와 세계은행은 출산율의 결정에서부터 인종 통합, 남녀 차별은 물론 문화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안에 대해 조건을 달 수 있어야만 한다.
IMF의 경우 처음에는 통화 평가절하 등 채무국의 국제수지 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만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차츰 예산 적자가 국제수지 불안의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정부 예산과 관련한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국영 기업에서 발생한 손실이 예산 적자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국영 기업의 민영화와 같은 조건까지 내걸기에 이르렀다. 이런 논리에 의해 시작된 임무 확장은 끝없이 이어졌다. 가령 IMF는 1997년 한국에 대해 ‘민간 부문’ 회사들의 부채가 지나치게 많은 것이 한국 금융 위기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논리로 이 회사들의 부채 규모를 놓고 조건을 내걸었다.
흡사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부자 나라들은 IMF의 금융 원조에 따른 조건으로, 채무국들이 자국 경제를 조정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나 채권국들에는 이익이 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는 일도 많다. 1997년에 한국이 IMF와 맺은 협정을 본 어떤 이는 몹시 격분해서 “이 협정안의 서너 가지 조항들은 일본과 미국이 오랫동안 한국에 채택을 유도해 왔던 정책의 복사판이다. 이 협정안에는 특정한 일본 상품에 대한 무역 장벽의 축소를 앞당기는 것과 ··· 한국 기업들에 대해 적대적인 인수에 참여해 대주주로서의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고, 은행업 및 기타 금융 서비스업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를 늘릴 수 있도록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자본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수입 공산품으로 인한 경쟁 심화와 외국인 소유권의 확장은 ···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 한국이 곤경에 처하자 예전에 거부했던 무역 및 투자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IMF의 권력 남용이라고 보고 있다”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는데, 이렇게 말한 이는 반자본주의도 무정부주의자도 아닌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경제 자문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하버드의 보수적인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이었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지적했듯이 브레턴우즈 기구들의 정책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서 성장 저하와 불평등한 소득 분배의 심화, 그리고 경제 불안정을 낳았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나라들의 융자 조건 악용과 결부된 IMF와 세계은행의 임무 확대는 정말이지 용납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IMF와 세계은행은 어째서 이런 형편없는 결과를 초래한 잘못된 정책을 끈질기게 고수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들의 의사결정 지배 구조가 부자 나라들의 이익에 유리한 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기구들은 (1원 1표 시스템으로) 근본적으로 어떤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본금 액수에 따라 결정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부자 나라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전체 투표권 중 60%를 장악해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가장 중요한 18개 영역에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29
이런 의사결정 지배 구조로 말미암아 IMF와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 각각에 맞게끔 신중하게 고안된 정책 대신 부자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타당하다고 받아들이는 표준적인 정책 패키지를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른 성과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정책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가 외부의 강요로 간주하고 저항하면 그 정책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들어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IMF와 세계은행 역시 여러 가지로 대응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겉치레에 불과한 조치들도 있다. 가령 IMF는 자신도 빈곤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표시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빈곤 감축 및 성장 촉진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보다 폭 넓은 주체와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예컨대 세계은행이 비정부기구NGO들과 협의하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협의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의 비정부기구들이 간접적으로라도 세계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가 계속 늘어나는 지금 시점에서 이런 조치의 실효성은 더더욱 의심스럽다.
IMF와 세계은행은 또한 프로그램에 대한 ‘주인 의식’을 증대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의 구상 단계에서 해당 국민들을 참여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은 실제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IMF나 세계은행은 고도로 훈련된 경제학자 군단과 무수한 금융 자원을 가지고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여기에 맞서 논쟁을 벌일 만한 지적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IMF와 세계은행은 내가 “다양성에 대한 헨리 포드식 접근법”*이라고 일컫는 방법을 채택해 왔다. 즉 정책과 관련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간주하는 국가별 차별화의 폭이 대단히 협소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선거나 임명을 통해 IMF나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핵심 경제 부서에 앉히는 경향이 늘고 있다. 결국 ‘국가별’ 해결책들 역시 갈수록 브레턴우즈 기구들이 내놓는 해결책을 닮게 되는 것이다
1995년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라 WTO가 창립되면서 사악한 삼총사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WTO의 활동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장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니 여기서는 논의의 초점을 WTO의 의사 결정 지배 구조에 국한하도록 하자.
WTO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WTO가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시장에 파고들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심지어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런 비판에는 타당한 측면들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비록 이런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WTO는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국제 조직이다. WTO는 IMF나 세계은행과는 달리 1국 1투표권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민주적’이다. 또한 유엔의 경우 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영구 회원국이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WTO에서는 그 어느 나라도 거부권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수적으로 우세한 만큼 개발도상국들이 WTO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IMF나 세계은행에서 차지하는 지위보다 훨씬 더 높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실제로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 나라들로 이루어진 과두 집단에 의해 WTO가 운영되고 있다. 가령 (1998년의 제네바 회의, 1999년의 시애틀 회의, 2001년의 도하 회의, 2003년의 칸쿤 회의 등) 여러 차례의 각료 회의에서는 초청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는 이른바 그린룸 회의를 통해 모든 중요한 협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회의에 초청된 것은 부자 나라들과 부자 나라들이 무시할 수 없는 (인도와 브라질 같은) 몇몇 개발도상국뿐이었다. 이에 반발한 몇몇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1999년 시애틀 회의에서 초청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린룸 회의에 들어가려 시도하다가 결국 물리적인 힘에 의해 쫓겨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수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WTO의 결정은 부자 나라들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치기 십상이다. 부자 나라들은 해외 원조 예산을 빌미로 삼거나, IMF나 세계은행 혹은 ‘지역별’ 다자간 금융 기구*들의 융자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개발도상국들을 협박하거나 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적 자원과 협상 능력에서 부자 나라들과 개발도상국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내가 전에 가르쳤던 한 학생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모국에서 외교 업무를 담당하다 최근 그만두었다. 그에 따르면, 그를 포함해 단 세 명이서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관련 모든 회의에 나라를 대표해 참석해야 했다. 그런데 하루에 대개 12건씩 회의가 열렸기 때문에 이들 세 명은 몇 개의 회의는 아예 제쳐 놓아야 했고, 나머지 회의에도 세 명이 분담해 참석해야 했다. 결국 한 사람이 회의 하나에 두세 시간 정도만 배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결과 제때 들어가 유용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때를 놓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적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주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사례를 들자면, 미국은 파견된 지식재산권 담당자만 해도 수십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나라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제네바에 단 한 명도 보내지 못하는 개발도상국이 스무 곳이 넘고, 한두 사람만으로 버텨야 하는 나라들도 많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무수한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국제 무역 협상 자체가 부자 나라들에 유리하도록 판이 짜여져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국제 무역 협상은 흡사 어떤 사람들은 권총을 들고 싸우는데, 어떤 사람들은 공중 폭격을 하고 있는 전쟁과 같은 것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이길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반反혁명의 선두에 섰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대안이 없다”라는 말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물리친 적이 있는데, 세계화에 대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설명 방식에는 바로 이 ‘대안 없음’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스며들어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세계화를 통신과 운송 기술의 거침없는 발전에서 비롯된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어느 올리브 나무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다투는” 시대에 뒤떨어진 현대판 러다이트주의자들이라고 표현하기를 즐긴다. 이들에 따르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면 재앙이 일어날 뿐이며, 이는 양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 일어난 세계 경제의 붕괴와 1960~1970년대에 벌어진 개발도상국들의 국가 주도형 산업화의 실패가 입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역사의 흐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인데, 그 방법은 거의 모든 성공한 경제가 번영해 가는 동안 입었던 것이라고 회자되는, 치수가 하나뿐인 황금 구속복을 입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나는 대안 없음이라는 결론은 세계화를 추진하는 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인식에서, 역사를 이론에 맞추어 왜곡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임을 지적했다. 자유 무역은 대개 약소국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으며, 선택권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의 대부분은 짧은 예외 기간을 제외하고는 자유 무역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성공한 경제는 거의 모두 세계 경제로의 무조건적인 통합 과정이 아닌, 선택적이고 전략적인 통합 과정을 거쳐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도 제시했다.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은 정책 자율성을 완전히 박탈당했던 (식민 지배와 불평등 조약으로 점철된) 첫 번째 세계화 시기나 정책 자율성이 크게 위축되었던 지난 사반세기보다 상당한 정책 자율성을 가지고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했던 ‘형편없었던 옛날’인 그 시절에 훨씬 더 나은 성과를 올렸다.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이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만일 기술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870년대보다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대화된 운송과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1970년대에 세계화가 덜 진전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은 세계화의 외부적인 경계를 규정지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 세계화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어떤 국제 협정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 없음’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가 살펴볼 것이다.
○ 부자 나라는 케인스주의, 가난한 나라는 통화주의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체제를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라고 묘사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세계적인 규모의 거시경제 정책도 이와 유사하게 부자 나라에는 케인스주의를, 가난한 나라에는 통화주의를 적용한다.
부자 나라는 경제 후퇴기에 들어서면 대개 통화 정책을 완화하고 예산 적자를 늘린다. 개발도상국에 같은 일이 발생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실업이 세 배로 늘어나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IMF를 통해 이자율을 불합리한 수준으로 올리고, 예산 균형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예산 흑자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한국이 1997년에 사상 최대의 재정 위기에 직면했을 때, IMF는 한국의 재정 적자를 GDP의 0.8% 이내에서 운용하도록 허용했다. (게다가 이것도 IMF가 몇 개월 동안 예산 흑자 정책을 사용하여 재난을 불러일으킨 뒤의 일이다.) 1990년대 초 스웨덴이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이는 1997년 한국의 경우와 비슷하게 엉성한 자본 시장 개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예산 적자의 규모는 한국의 10배 수준인 GDP의 8%였다.
더욱 얄궂은 사실은 개발도상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허리띠를 졸라 매면 기초적인 케인스 경제학에도 무지하다는 비웃음을 사게 된다는 점이다. 일례로 1997년에 외환 위기를 맞아 한국의 주부들이 가정에서의 반찬 가짓수 줄이기 운동을 비롯해 자발적인 절약 캠페인을 펼쳤을 때, 『파이낸셜 타임스』 한국 특파원은 이런 행동이 “성장을 떠받치는 데 필요한 수요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경제 후퇴를 악화시킬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웃었다.29 그러나 한국의 주부들이 했던 행동과 그 『파이낸셜 타임스』 특파원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IMF에 의해 강요되었던 재정 지출 삭감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거시경제 정책을 개발도상국에 강요하고 있다. ‘세입을 초과한 지출’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비난하는 그들의 태도는,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하여 ‘투자를 위한 차입’을 하는 것을 막고 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비난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 개발이나 자녀 교육에 투자하기 위해서 대출을 받는 것도 비난받을 일이 된다.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은 그 나라가 어떤 발전 단계에 있고, 또 돈을 대출하여 어디에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타당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재무 장관 카발로가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이 필요한 ‘반항하는 10대’와 같다는 말은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그가 정말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다. 10대는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10대 청소년이 다 큰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며 저축을 늘리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이 이미 ‘다 큰’ 국가들에나 어울리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부자 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 기울어진 경기장이 필요하다
자국의 특정한 상황에 알맞은 정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실제로 이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자국의 발전에 ‘알맞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어 왔다. 이들은 IMF, 세계은행, 그리고 WTO라는 사악한 삼총사와, 지역별 FTA나 투자협정을 이용해 개발도상국들이 이런 능력을 갖지 못하게 했다. 이들은 (보호 무역이나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 따위의) 민족주의적인 정책들은 실시하는 나라들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 금지하거나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러면서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는 개념을 계속 들먹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개발도상국들이 사용하는 보호와 보조금, 규제를 위한 추가적인 정책들은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하는 것이므로 개발도상국들에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런 것들을 허용한다면 상대편인 부자 나라들은 평평하지 않은 경기장의 낮은 쪽에서 높은 쪽을 향해 오르막길을 올라가느라 고생을 해야 하는데, 개발도상국들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을 향해 내달리면서 공격을 하는 축구팀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모든 보호 장벽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하게 하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근본적으로 경쟁이 공정할 때에만 시장이 주는 혜택을 수확할 수 있다.9 이와 같이 ‘경기장을 평평하게 해야 한다’는 식의 누가 들어도 지당한 개념을 들먹인다면 감히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 경기를 하는 한쪽 편이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 유나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하여 내달리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공정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기보다는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선수들이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국제적 시스템을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선수들의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데 경기장이 평평하다면 결국 그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 된다. 축구 경기를 하는 한쪽 편이 브라질 국가 대표팀이고, 상대편은 열한 살 먹은 내 딸 유나의 친구들로 짜여진 팀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아래쪽을 향하여 내달리며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공정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기장을 평평하게 하기보다는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다.
■ 저자소개
○ 저자 : 장하준 / 경제학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임용되어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2022년부터 런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2014년에는 영국의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상가 50인’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유엔 산하 기구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유럽투자은행 등 다자간 금융 기구 그리고 옥스팜, 경제 정책 연구소 등 엔지오를 비롯해 여러 정부 기구 및 민간 조직에 오랫동안 자문을 제공하며 함께 일해 왔다.
지금까지 상상빌더 였습니다. 감사합니다.